
작년 12월, 저는 연말정산 환급액 148만 원이라는 숫자에 꽂혀서 연금계좌에 900만 원을 한 번에 넣었습니다.
세액공제 16.5%라는 말만 듣고 '이건 무조건 이득이지'라고 생각했거든요.
그런데 막상 입금하고 나니 불안해지더군요. 이 돈을 20년 넘게 못 쓴다는 게 실감 났고, 몇 년 안에 결혼자금이나 집 계약금이 필요하면 어쩌나 하는 현실적인 걱정이 밀려왔습니다.
연금저축과 IRP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숫자에만 현혹됐던 제 경험을 바탕으로,
연말정산 시즌마다 반복되는 연금계좌 고민을 솔직하게 풀어보려 합니다.
세액공제만 보고 900만원 넣었던 순간
연금저축과 IRP는 사적연금이라고 부르는 개인 노후준비 계좌입니다.
국민연금처럼 정부가 관리하는 게 아니라 제가 직접 운용하는 구조죠.
이 두 계좌의 가장 큰 매력은 세액공제입니다.
연간 900만 원까지 납입하면, 총급여 5,500만 원 이하는 16.5%, 초과는 13.2%를 연말정산 때 돌려받습니다.
연봉 5,000만 원 정도면, 900만 원을 꽉 채우면 148만 5천 원을 환급받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.
솔직히 이 숫자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.
한 달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돌려받는다는 게 실감이 안 날 정도로 컸거든요.
그래서 적금 깨고, 비상금 일부 털어서 900만 원을 한 번에 넣었습니다.
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. 입금하고 며칠 지나니까 '이 돈을 만 55세까지 못 쓴다'는 조건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더군요.
가입일로부터 5년, 그리고 만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받아야 낮은 세율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제대로 이해한 겁니다.
중도해지하면 세제 혜택 받은 금액에 16.5%의 기타소득세를 내야 하고요.
과세이연과 저율과세, 진짜 장점은 따로 있었습니다
연금계좌의 진짜 힘은 세액공제보다 과세이연과 저율과세에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.
일반 펀드나 예금은 이자나 배당이 발생할 때마다 15.4% 세금을 떼가지만, 연금 계좌 안에서 발생한 수익은 인출 전까지 세금을 한 푼도 안 냅니다. 세금 낼 돈까지 재투자되니까 복리 효과가 극대화되는 구조죠.
예를 들어 30세에 1,000만 원을 넣고 연 10% 수익을 낸다고 가정하면, 일반 계좌는 세금 떼고 나서 30년 후 1억 227만 원이 됩니다.
하지만 연금 계좌는 1억 7,311만 원이 되죠. 7,084만 원이나 차이가 납니다. 제가 직접 계산해보니 정말 놀라운 차이였어요.
여기에 만 55세 이후 연금으로 받으면 15.4%가 아니라 3.3~5.5%의 낮은 연금소득세만 내면 됩니다.
최소 10년 이상 나눠 받아야 이 혜택을 온전히 받을 수 있고요.
이런 구조를 이해하고 나니, 연금계좌는 단순히 '세금 아끼는 통장'이 아니라 '장기 복리 시스템'이라는 게 명확해졌습니다.
연금저축과 IRP의 차이도 중요합니다.
연금저축은 누구나 가입 가능하고 운용이 자유롭지만, IRP는 소득이 있어야 가입할 수 있고 안전자산 30% 보유 의무가 있습니다. 저는 처음엔 이 차이를 몰라서 연금저축펀드에만 900만 원을 몰아넣었는데,
나중에 생각해보니 두 계좌로 나눠 넣는 게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.
환급액보다 현금흐름을 먼저 봐야 합니다
제 경험상, 900만 원을 무리해서 채우는 것보다 제 현금흐름을 먼저 보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.
3~5년 안에 결혼자금, 전세자금, 자동차 구입 같은 목돈이 필요한 계획이 있다면, 연금계좌에 너무 많이 넣는 건 위험합니다.
중도해지하면 세제 혜택이 날아가니까요.
소득의 10~15%를 저축하라는 말도 많이 하는데,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.
'나중에 쓰고 싶은 만큼'을 역산해서 지금 넣는 게 더 현실적이에요.
예를 들어 월급 300만 원 받는 사람이 노후에도 비슷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싶다면, 연 10% 수익률 가정 시 월 28만 원만 연금계좌에 넣으면 됩니다.
나머지는 당장 필요한 목돈 준비에 쓰는 거죠.
연금저축펀드와 연금저축보험 중에서는 펀드 쪽을 추천합니다.
보험은 초기 사업비가 비싸고 공시이율이 낮아서 장기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을 못 따라갈 가능성이 큽니다. 펀드는 수수료가 낮고, ETF나 자산배분형 상품으로 직접 운용할 수 있어서 기대수익률이 훨씬 높습니다.
제가 써보니 펀드 계좌가 훨씬 유연하더군요.
연금계좌는 분명 좋은 제도입니다.
하지만 환급액에만 눈이 멀어 무리하게 넣으면, 나중에 제가 느꼈던 불안감과 후회를 똑같이 겪을 겁니다.
148만 원 환급받는 것도 좋지만, 그 전에 내 결정세액과 향후 자금 계획을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.
연금은 '노후 자금 시스템'이지, 단기 절세 수단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알겠습니다.
저처럼 급하게 넣고 후회하지 마시고, 구조를 이해하고 여유 있는 금액부터 시작하시길 권합니다.